어느 날 아침 인터넷 뱅킹이 안 되고 공과금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내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계좌가 전면 거래 정지되는 이른바 통장 묶기 사기 피해가 계속 늘고 있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급정지된 계좌는 2023년 2만 7,652건에서 2024년 3만 2,409건으로 증가했다.
통장 묶기, 어떻게 이루어지나
원리는 단순하지만 교묘하다. 사기범이 A씨를 속여 아무 관계 없는 일반인 B씨 계좌로 소액을 송금하게 만든다. 돈을 잃은 A씨가 B씨 계좌로 사기를 당했다고 은행에 신고하면, 은행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금액 크기와 관계없이 B씨 계좌를 즉시 전면 지급정지한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오히려 사기 수법으로 악용된 것이다.
여기에 사기범들은 계좌가 묶인 B씨에게 추가 금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통장을 풀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거나, 오히려 B씨를 보이스피싱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금전 요구까지 이어지면 통장 협박이라고 부른다.
금감원이 바꾼 구제 절차 3가지
이런 피해가 잇따르자 금융감독원이 구제 절차를 손봤다.
첫째, 처리 기한이 생겼다. 그동안 별도 처리 기한이 없어 이의제기부터 결과 통보까지 몇 달씩 걸리기도 했다. 이제는 명의인이 충분한 소명 자료와 함께 이의제기 신청서를 제출하면 5영업일 안에 심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5월 중 은행권부터 시행하고 이후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둘째, 제출 서류가 줄었다. 기존에는 급여 수령 사실을 증명하려면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 재직증명서, 고용계약서를 모두 제출해야 했다. 앞으로는 세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 제출하면 된다. 다만 AI를 이용한 공문서 위·변조 가능성에 대비해 담당자가 추가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셋째, 계좌 일부만 묶는 제도가 도입됐다. 입금액이 소액이고 과거 지급정지 이력이 없으며 나머지 입출금 내역이 생계와 연관된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의심 금액만 지급정지하고 나머지 금액은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지급정지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내가 피해자라면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르는 돈에 절대 손대지 않는 것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인출하거나 이체하는 순간 사기범과 공범으로 엮일 수 있다. 돈에 손대지 않고 즉시 은행과 경찰에 신고한 뒤 반환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사기범과 합의하려는 시도도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합의금을 줘도 통장이 풀린다는 보장이 없고, 한 번 돈이 나오는 상대로 인식되면 끝없는 협박에 시달릴 수 있다. 사기범이 보낸 협박 메시지는 하나도 지우지 말고 모두 캡처해 소명 증거로 보관해야 한다.
평소 계좌번호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식당 전단이나 간판에 입금 계좌를 적어두는 자영업자, 중고 거래나 인터넷 쇼핑몰 이용자는 계좌번호가 외부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 통장 묶기 사기의 표적이 되기 쉽다. SNS나 인터넷에 계좌번호를 불필요하게 올리지 않는 습관이 예방의 첫걸음이다.
│ 1분 Q&A
Q. 계좌가 묶인 뒤 생활비가 급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더라이프 생각 : 가장 먼저 해당 은행 창구를 방문해 일부지급정지 제도 적용 여부를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금감원 개선안에 따라 의심 금액만 묶고 나머지는 사용 가능한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5영업일 심사 기한이 도입된 만큼 소명 자료를 빠르게 준비해 이의제기 신청서를 제출하시는 것이 현재로서 가장 빠른 해결 방법입니다. 이의제기 신청은 지급정지를 요청한 은행에서 할 수 있습니다.
Q. 이의제기를 해도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면 어떻게 되나요?
A. 더라이프 생각 : 이의제기 심사에서 지급정지가 유지되더라도 추가 소명이 가능합니다.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1332) 또는 은행연합회 민원 창구를 통해 재심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경찰에도 피해 사실을 신고해 사건 진행 상황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두시는 것이 이후 소명에 유리합니다. 사기범의 협박 메시지, 송금 경위 등 증거를 꼼꼼하게 보관하시는 것이 재심에서 핵심 역할을 합니다.
Q. 자영업자로 계좌번호를 공개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요?
A. 더라이프 생각 : 거래용 계좌와 생활 계좌를 분리하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외부에 공개하는 입금 전용 계좌를 별도로 만들어 두면, 혹시 해당 계좌가 묶이더라도 생활비 계좌에는 영향이 없습니다. 또한 카카오페이, 토스 같은 간편결제 연동 계좌번호 형식을 활용하면 실제 계좌번호를 노출하지 않고 입금을 받을 수 있어 더욱 안전합니다.
통장 묶기 사기는 내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아도 하루아침에 경제생활이 마비되는 피해를 준다. 모르는 입금은 절대 사용하지 않고 즉시 신고하는 것, 그리고 평소 계좌번호 노출을 줄이는 것이 현재로서 가장 확실한 예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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